전주이씨영성군파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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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대하 (21화) 공양왕의 방문과 밤에 열린 궁문

정치가 교착되면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답을 찾는다. 『태조실록』 총서 121번째와 122번째 기사는 1391년 7월의 밤을 아주 구체적으로 남겼다. 왕이 신하의 집에 가고, 신하의 아들이 왕의 궁문을 여는 장면입니다.

공양왕의 사제 방문과 연회 자체 도해
이미지 출처: 조선왕조실록 공식 원문을 바탕으로 만든 자체 도해

왕이 시중의 집에 가다

총서는 7월에 공양왕이 이성계의 사제에 거둥하여 주연을 베풀고 음악을 베풀어 놀다가 밤중이 되어 그쳤다고 적었다. 왕이 신하의 집에서 밤늦도록 머문 일은 흔한 장면이 아니지요. 이 만남이 어떤 대화를 담았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어진 기사는 같은 밤의 뒷부분을 전한다. 이성계가 강비와 함께 공양왕에게 술잔을 드리니 왕이 의대와 입자, 보영, 안장 갖춘 말을 내렸고, 이성계는 즉석에서 이를 입고 배사했다고 해요. 하사가 즉석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기록의 결입니다.

잠긴 문을 연 밤

밤이 되자 유만수가 문을 잠갔다. 총서에 따르면 이때 훗날 태종이 된 이가 몰래 이성계에게 사뢰고 나가기를 청한 뒤, 이성계의 명령으로 금직에게 문을 열게 하고 그를 모시고 저택으로 돌아왔지요. 금직은 열쇠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순서총서의 서술
1왕이 연회를 베풀고 하사품을 내림
2밤에 유만수가 궁문을 잠금
3태종이 나가기를 청함
4금직이 문을 열어 시중을 모시고 귀가

밤에 벌어진 일의 순서 자체 도해
이미지 출처: 조선왕조실록 공식 원문을 바탕으로 만든 자체 도해

다음 날의 처리

기록은 다음 날로 이어진다. 왕이 노하여 금직을 가두었고, 이성계가 대궐에 나아가 술을 견디지 못해 금직으로 하여금 문을 열게 했다고 사과하자 왕이 금직을 놓아주었습니다. 처벌과 사과와 방면이 하루 만에 끝났지요.

이 대목은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왕은 규율을 세워야 했고, 신하는 사과의 형식을 갖추어야 했다. 그런데 이미 잠긴 문을 여는 일이 가능했다는 사실 자체가 궁정의 힘의 배치를 말해 주지요. 그리고 그 밤, 태종은 장차 벌어질 일의 주인공으로 기록에 이름을 올렸어요.

1392년 정월, 이염의 술

이듬해 정월의 기사는 술과 예절이 또 한 번 문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밀직사 이염이 술에 취해 왕에게 예절을 차리지 않으니 간관이 극형에 처하기를 청하였고, 이성계는 이염이 비록 죄가 있지만 그 말이 미친 듯이 망령되나 강직한 데서 나왔으니 용서하기를 청했어요.

왕이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이 기사의 서술만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사형을 청하는 자리에서 이성계가 감형을 청했다는 사실이 남았습니다.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그것을 누르는 목소리가 함께 있었다는 뜻이지요.

금직은 열쇠를 맡은 관리였습니다. 그가 가두어지고 하루 만에 풀려난 일은 왕이 사안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다만 이것도 해석이지 기록의 결론은 아니에요.

밤의 사건을 두고 후대 기록자들이 남긴 표현도 눈여겨볼 만하다.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적었다는 점이요. 왕조가 바뀐 뒤에도 이 장면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 기사의 무게입니다.

이 회차의 제목을 술과 문으로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대한 사건 대신 하루 밤의 장면을 따라가면, 그 해 조정의 공기가 보입니다. 다음 회차부터는 다시 거리로 나가게 되지요. 이 해의 마지막 기록이 술자리와 문에 관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시면, 다음 회차의 거리 풍경이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사람들의 술자리에서 오간 말보다 새벽 문 앞에서 오간 침목이 더 많은 것을 말해 주지요. 거리에서 벌어질 일도 결국 같은 결일 것입니다. 표정과 순서와 타이밍이 사람을 움직입니다. 사람들의 쌀자리에서 오간 말보다, 새벽 문 앞에서 오간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해 주지요.

이 회차에서 구분해 읽을 점 자체 도해
이미지 출처: 조선왕조실록 공식 원문을 바탕으로 만든 자체 도해

술자리가 정치가 되는 자리

이 회차에 큰 사건은 없다. 그러나 밤의 연회, 잠긴 문, 다음 날의 사과는 모두 정치적 신호다. 신하의 집에 가서 밤늦도록 머무는 왕은 이미 결단을 내리지 못한 왕이고, 그 집에서 아들이 문을 열어 아버지를 모시고 나오는 장면은 다음 세대의 선택을 예고합니다.

다음 회차로

1392년 봄, 조정의 긴장은 최고조에 이른다. 다음 회차에서는 정몽주가 조준과 정도전을 탄핵하고, 개경의 거리에서 그 긴장이 결말을 맞는 과정을 살펴보지요.

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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