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영성군파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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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대하 (19화) 사전 혁파가 남긴 원망

권력이 한 사람에게 모이면 반대도 그 한 사람에게 모인다. 『태조실록』 총서 128번째 기사는 그 구조를 아주 분명하게 적어 두었다. 이 기사는 이성계가 왜 꺼림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두 갈래로 설명합니다.

사전 혁파와 구세족의 원망을 정리한 자체 도해
이미지 출처: 조선왕조실록 공식 원문을 바탕으로 만든 자체 도해

두 가지 이유

첫째는 공과 인심이다. 총서는 이성계가 공이 높고 여러 사람의 마음을 얻으니 공양왕이 이를 꺼렸다고 적었지요. 둘째는 토지 제도예요. 구가세족이 사전을 혁파한 것을 원망하고 있었고, 공양왕은 그들이 이성계를 꺼리는 것을 알고 온갖 방법으로 무함하고 훼방하였다는 서술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원망의 성격이 두 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왕의 자리에서 오는 정치적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토지를 잃은 세력의 이해관계지요. 두 층이 만나면서 참소가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바뀝니다.

사전 혁파라는 표현은 이 기사에 한 번 나옵니다. 실록은 조치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그 결과로 생긴 원망만 적었어요. 제도의 세부 내용은 다른 사료에서 확인해야 할 부분입니다.

구가세족이라는 말도 짚어 둘 필요가 있다. 대대로 벼슬한 집안이라는 뜻으로, 이들은 토지와 관직을 함께 누려 온 세력이었지요.

인척을 타고 들어온 참소

총서는 우왕과 창왕의 당이 왕실에 인척 관계를 맺어 조석으로 참소하였다고 적었다. 공양왕은 도리어 그 참소를 믿고 좌우 신하와 몰래 이성계를 제거하려고 도모했다는 문장이 뒤따릅니다.

갈래총서의 서술
왕공이 높고 인심을 얻음을 꺼림
구세족사전 혁파를 원망
우왕·창왕의 당인척으로 조석 참소
결과왕이 참소를 믿고 제거를 도모

참소가 커지는 구조 자체 도해
이미지 출처: 조선왕조실록 공식 원문을 바탕으로 만든 자체 도해

휘하 인사의 글, 그리고 변중량

기사는 한 사건을 더 전한다. 이성계의 휘하 인사가 그 소위에 분개해 글을 올려 무망함을 변명하려 했고, 글이 이루어졌으나 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성계의 서형 사위인 변중량이 중간에 서서 변고를 관망하다가, 왕의 시기가 극도에 달한 것을 알고 화가 자기에게 미칠까 두려워하며 이 글을 왕의 사위 익천군 왕즙에게 알렸어요.

그 때문에 공양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왕은 이성계에게 휘하 인사가 글을 만들어 우현보 등을 논죄하려 한다는데 아는가 물었고, 이성계는 몹시 놀라 알지 못한다고 답한 뒤 휘하 인사를 불러 사정을 알고 이를 중지시켰습니다.

조정에서 문제가 된 것은 사실 자체보다 그 글이 누구의 손에 들어갔느냐였어요. 이 대목은 당시 조정의 분위기를 보여 줍니다. 같은 글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사건이 되기도 하고 묻히기도 했으니까요. 이 대목은 당시 조정의 분위기를 보여 줍니다. 같은 글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사건이 되기도 하고 묻히기도 했으니까요.

같은 시기 대간의 상소

6월의 기사는 대간이 우현보의 죄가 이색과 같다며 거듭 탄핵한 일을 전한다. 소가 세 번 올라갔으나 모두 전중에 머물러 두었다는 기록이 남았어요. 그리고 공양왕은 우현보의 죄상이 애매하고 사죄 전에 있으니 다시 청죄하지 말라고 대간을 타일렀습니다.

이어진 기사에는 황운기가 이성계를 부르러 갔으나 이성계가 병으로 조회에 나가지 못한 일이 적혀 있다. 병은 이 시기 기록에서 자주 등장하는 물러남의 언어입니다. 실제 병이었는지, 정치적 거리두기였는지는 기록만으로 단정할 수 없지요.

대간의 상소가 반복되는 동안 왕의 태도는 흔들렸다. 한번은 우현보를 감싸고, 다른 장면에서는 참소를 믿었습니다. 기록은 그 변덕을 평가하지 않고 나열해 두었어요.

이 회차에서 구분해 읽을 점 자체 도해
이미지 출처: 조선왕조실록 공식 원문을 바탕으로 만든 자체 도해

원망이 남긴 자리

이 회차에는 결론다운 결론이 없다. 다만 원망이 어디에 쌓였는지는 분명히 드러납니다. 토지를 잃은 세력, 왕위의 정통성에 불안을 가진 세력, 그리고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측근까지 세 갈래가 한 사람을 향해 모였어요. 원망의 출발점은 서로 달랐지만 도착지는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회차에는 단죄할 인물도, 옹호할 인물도 뚜렷하지 않아요.

다음 회차로

다음 회차에서는 1391년 7월에서 12월까지를 봅니다. 참소가 잦아진 조정에서 이성계가 물러가겠다고 말하는 장면과, 그를 만류한 사람들의 이름을 살펴보지요.

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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