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사가 지나간 자리에는 새 질서가 들어선다. 1390년 12월, 이성계는 다시 문하시중 도총중외제군사가 되었다. 총서는 그가 전문을 올려 사양했다고 적었어요. 사양하는 글과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답이 주고받는 장면은 이 시기 기록의 특징입니다.

사양하는 글, 윤허하지 않는 답
총서에 실린 사양 전문에는 신하의 도리를 말하는 문장이 이어진다. 덕을 헤아려 직위를 주는 것이 임금의 밝음이고, 총행으로 공을 차지하지 않는 것이 신하의 의리라는 표현이 그것이지요.
이 글은 수사처럼 보이지만 정치적인 신호이기도 합니다. 최고위 군사 직을 받으면서도 사양하는 형식을 갖추는 것은, 그 직을 스스로 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록에 남기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사양을 윤허하지 않는 답이 돌아오면서 그 직은 다시 그의 것이 됩니다.
정월, 오군이 삼군이 되다
1391년 정월의 기사는 더 건조하다. 총서는 오군을 줄여 삼군으로 삼고, 도총제부로써 중외의 군사 업무를 통솔하게 하고, 이성계를 도총제사로 삼았다고 적었습니다. 조직 개편과 인사가 한 문장에 함께 담겨 있지요.
| 구분 | 개편 전 | 개편 후 |
|---|---|---|
| 군 조직 | 오군 | 삼군 |
| 통솔 기구 | 기록에 명시 없음 | 도총제부 |
| 통솔자 | 기록에 명시 없음 | 도총제사 이성계 |
표의 빈칸은 실록이 적지 않은 부분이다. 총서는 개편의 결과만 남기고 과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이 회차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결과, 곧 군사 조직이 다섯에서 셋으로 정리되고 통솔 기구와 수장이 정해졌다는 사실입니다.
도총제부라는 이름은 이 기사에서 처음 나온다. 총서는 이 기구가 중외의 군사를 통솔했다고만 적고, 구성과 권한은 적지 않았어요. 후대 기록을 보태지 않고 읽으면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표를 다시 보자. 개편 전과 후를 나누어 적으면 숫자 두 개가 보입니다. 다섯에서 셋. 그러나 그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이 기사가 알려 주지 않아요. 다른 기사와 맞춰 읽어야 하는 부분이지요.
이 해 기록에서 눈에 띄는 또 한 가지는 사양의 빈도다. 12월에 사양하고, 정월에 개편을 맡고, 다시 3월에 사양한다. 기록자는 이 반복을 지루해하지 않고 그대로 옮겨 두었어요. 반복 자체가 당시의 분위기를 말해 주니까요. 이 반복을 읽는 독자라면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입니다. 왜 그 자리를 계속 맡았을까요. 기록은 그 대답을 직접 주지 않아요. 다만 군사와 인사가 엮인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점은 짐작할 만합니다.

3월, 다시 사직을 청하다
3월에는 사직을 청하는 전문과 윤허하지 않는 비답이 다시 오간다. 총서는 그가 용렬한 사람으로서 특별한 은혜를 입어 직위가 항상 장상에 이르렀으나 털끝만한 도움도 없었다는 표현을 전해요.
현인을 등용하는 길을 피하고 임금의 밝은 정치를 열어야 한다는 문장도 함께 실렸다. 사양하는 글이 반복되는 것을 두고 형식이라고만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때마다 조정의 사정이 달라져 있었으니까요.
사양 전문이 길게 실린 것도 특징이다. 총서는 그가 임금의 명을 정면으로 거절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자리가 마땅하지 않다는 뜻을 여러 번 밝히게 했습니다.
같은 달 기록에는 대간의 상언이 이어진다. 우현보의 죄가 이색과 같은데 이색이 이미 폄직되었으니 함께 먼 곳으로 귀양보내야 한다는 청이었고, 소가 세 번 올라갔으나 모두 전중에 머물러 두었다고 적혀 있어요.
개편이 남긴 것
군사 조직을 다섯에서 셋으로 줄이는 일은 숫자 정리가 아니다. 지휘 계통이 단순해지고, 그 정점에 서는 사람의 무게가 커집니다. 총서는 그 무게를 평가하지 않고 누가 어느 자리에 올랐는지만 적어 두었어요.
한 가지 덧붙이면, 이 무렵 조정의 관심은 군사에만 있지 않았다. 토지 제도와 인사, 그리고 명과의 관계가 함께 얽혀 있었습니다. 조직 개편 한 줄을 읽을 때 그 배경을 같이 보면 이해가 깊어지지요.

다음 회차로
직함이 올라갈수록 조정 안의 시선도 달라진다. 다음 회차에서는 사전 혁파를 둘러싼 구세족의 원망과, 그 원망이 참소로 바뀌는 과정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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