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영성군파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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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대하 (17화) 명에 고발된 즉위, 윤이와 이초의 옥사

1390년 5월, 조정에 뜻밖의 소식이 들어온다. 명의 예부를 통해 고려 사람 두 명이 황제에게 고발한 내용이 전해진 것이다. 『태조실록』 총서는 그 고발문을 길게 옮겨 적었어요.

1390년 윤이·이초 옥사의 흐름 자체 도해
이미지 출처: 조선왕조실록 공식 원문을 바탕으로 만든 자체 도해

예부가 전한 고발문

총서에 따르면 순안군 왕방과 동지밀직사사 조반이 경사에서 돌아와 예부가 전한 말을 전합니다. 파평군 윤이와 중랑장 이초가 황제에게 호소하기를, 고려의 이 시중이 왕요를 세워 임금으로 삼았는데 왕요는 종실이 아니고 이 시중의 인친이며, 왕요가 이성계와 모의해 병마를 움직여 장차 상국을 범하려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고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재상 이색 등이 옳지 못하다고 하니 그들을 잡아 죽이려 하고, 우현보 등은 잡아 먼 곳으로 귀양보냈는데, 내쫓긴 재상들이 몰래 사람을 보내 천자에게 고하고 친왕에게 청해 천하의 군사를 움직여 정토하게 하라는 요청까지 담겼습니다.

조반은 윤이와 대면해 따졌다. 총서는 그때 윤이가 깜짝 놀라 얼굴빛이 변하였다고 적었지요. 이 한 줄이 고발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이 사건이 무서웠던 이유는 대상이 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발문에는 재상들의 이름이 줄줄이 적혔고, 그 이름은 실제로 옥에 갇혔습니다. 왕위의 정통성이 흔들리면 조정 전체가 함께 흔들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지요.

조정은 어떻게 움직였나

대응은 즉각적이었다. 우현보·권중화·경보·장하·홍인계·윤유린·최공철 등을 순군옥에 가두고, 이색·이임·우인열·이인민·정지·이숭인·권근·이종학·이귀생 등은 청주 감옥에 가두어 국문하게 하였습니다. 한 사건으로 조정의 중신이 두 갈래 감옥에 나뉘어 갇힌 셈이에요.

옥사는 두 달을 넘게 이어졌다. 5월에 갇히고 6월에 교지가 내려왔으며, 11월에 이르러서야 이성계가 사직으로 응답했습니다. 한 사건이 반년을 끌었다는 뜻이지요.

이 사건 뒤에 이성계의 자리가 더 높아졌다는 점도 보아 두세요. 사직은 물러남이 아니라 자리 바꿈이 됐습니다. 영삼사사가 되면서도 군사에 대한 발언권은 이어졌으니까요.

옥사가 끝난 뒤에도 명과의 문제는 남아 있었다. 정통성 논란은 한 번의 교지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이 긴장이 다음 해 개혁의 배경이 되었어요.

옥사 처리 순서 자체 도해
이미지 출처: 조선왕조실록 공식 원문을 바탕으로 만든 자체 도해

유수재와 교지

6월, 청주에 수재가 났다. 공양왕은 이성계와 심덕부를 불러 죄수 방면을 의논하고, 이조 판서 조온을 청주로 보내 교지를 내렸지요. 교지는 고발의 진위를 사람별로 나누어 판단합니다.

윤이의 친족 윤유린은 제가 그 죄를 알고 먹지 않고 죽었고, 공모한 최공철은 죄에 자복했으며, 김종연은 도피 중이고, 나머지는 정상이 명백하지 않으니 매질하여 묻기만 더한다면 억울하게 엮일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자복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각처에 안치하라는 결론이 붙어요.

인물 구분총서의 서술
윤유린죄를 알고 먹지 않고 죽음
최공철죄에 자복
김종연도피 중
나머지정상이 명백하지 않아 안치

이 대목은 기록의 성격을 보여준다. 실록은 사건을 한 덩어리로 뭉개지 않고, 자복과 도피, 불명을 구분해 적었습니다.

11월, 사직과 두 번째 고발

11월, 이성계는 윤이·이초의 옥사로 글을 올려 사직하고 영삼사사가 되었다. 그런데 같은 달 총서는 다른 사건을 전해요. 김종연이 서경에서 천호 윤귀택, 심덕부의 휘하인 조유와 공모해 이성계를 해치려 했고, 윤귀택이 이를 밀고했다는 내용입니다.

이성계는 그 말을 심덕부에게 알렸고, 덕부는 조유를 옥에 가두었다. 이성계는 덕부와 마음을 같이해 나라를 받들어 왔으니 조유를 신문하지 말고 두 신하가 처음부터 끝까지 보전하게 해 달라고 청했지요. 그러나 헌부가 상소로 국문을 청하자 조유는 복죄해 교형에 처해졌고, 심덕부·지용기·조언 등은 외방으로 귀양갔습니다.

옥사 기록을 읽는 태도 자체 도해
이미지 출처: 조선왕조실록 공식 원문을 바탕으로 만든 자체 도해

이 회차에서 남는 것

한 해 안에 두 번의 고발과 한 번의 사직이 겹쳤다. 고발의 진위는 끝까지 확정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사이 조정의 인물 배치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기록은 무엇이 사실이었는지 말해 주지 않고, 무엇이 일어났는지만 남겼지요.

다음 회차로

다음 회차는 1390년 12월의 복직과 1391년의 군제 개편으로 이어집니다. 군사 조직이 다섯에서 셋으로 줄어드는 해입니다.

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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