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영성군파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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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대하 (15화) 공양왕 즉위와 왕조 교체의 문턱

자료 확인일 2026.10.26 · 발행일 2026-11-02

시대의 배경을 상징하는 설명용 AI 삽화
AI 설명용 상징 삽화 · 자체 제작 · ChatGPT 구독 생성 · 실제 인물·사건·유적 사진이나 고증 복원도가 아닙니다.

위화도 회군 뒤 고려의 왕위는 연이어 바뀌었다. 『태조실록』 총서 기사 100번은 우왕과 창왕을 폐하고 정창군 요(瑤)를 공양왕으로 세운 과정을 적는다. 기사에는 심덕부(沈德符), 지용기(池湧奇), 정몽주(鄭夢周), 설장수(偰長壽), 성석린(成石璘), 조준(趙浚), 박위(朴葳), 정도전(鄭道傳) 등 여러 인물이 함께 열거된다. 이성계만의 한 줄로 설명할 수 없는 정치적 재편이었다.

1392년 7월, 이성계는 왕위에 올라 조선을 열었다. 그러나 이 문장은 결과를 짧게 말할 뿐, 그 사이의 갈등을 지워서는 안 된다. 우왕과 창왕의 정통성 문제, 명과의 관계, 공양왕 정권 아래의 권력 구조, 신진 관료와 기존 세력의 대립이 겹쳤다. 왕조 교체는 한 번의 결심이나 한 사람의 성공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다.

『태조실록』 총서는 뒤이어 이성계의 공적을 기리는 공양왕의 교지와 중흥공신 책록을 싣는다. 이는 당시의 정치 문서가 후대 왕실 기록 안에 남은 방식이며, 동시에 새 왕조가 자신의 기원을 정리한 방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적’이라는 표현은 사료의 언어로 소개하되, 그것을 논쟁 없는 역사적 판결처럼 옮기지 않는다.

전주이씨영성군파종중의 연재는 여기서 조선의 첫 문턱에 섰다. 8화의 이자춘이 고려로 돌아선 선택에서 시작해, 9~15화는 이성계가 고려의 장수로 기록되고 전쟁과 정치 변동을 거쳐 새 왕조의 군주가 되는 과정까지를 따라왔다. 다음 연재에서는 건국 직후의 제도와 왕실, 그리고 전주이씨 계통의 기록을 사료별 성격과 함께 살필 수 있다.

공양왕 옹립과 건국의 평가는 시대마다 다르다. 이 글은 실록에 확인되는 인물과 절차를 중심으로, 결과만으로 갈등을 지우지 않는다.

시대의 도구를 상징하는 설명용 AI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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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7편은 후대 왕실 기록·백과사전·국사편찬위원회 해설을 구분해 읽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어지는 회차도 확인되지 않은 대화나 계보 전승을 사실처럼 쓰지 않고, 원문이 남은 지점에서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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