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5년(세종 27) 한 노래가 지어졌다. 세종의 명을 받아 집현전 학자 권제·정인지·안지가 지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다. 125장으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1447년(세종 29)에 간행되었다. 한글로 간행된 최초의 문헌이다. (출처: 용비어천가 서문·위키문헌 원문)
왜 노래했는가 — 건국의 정당성
이 노래의 제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해동의 여섯 용이 나시어 일마다 하늘의 복이니 옛 성인들과 같으니
‘육룡’은 조선을 세운 여섯 임금을 용에 비유한 말이다. 목조(穆祖)·익조(翼祖)·도조(度祖)·환조(桓祖)·태조(太祖)·태종(太宗) — 태조 이성계와 그의 아버지·할아버지·증조·고조, 그리고 아들 태종이다. (출처: 용비어천가 제1장 및 그 해석) 앞의 네 분은 왕이 아니었으나 나라를 세운 뒤 임금으로 추존되었다. (출처: 조선왕조실록) 왕조는 이 노래로 건국이 우연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쌓인 결과임을 노래했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원본.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퍼블릭 도메인)
서문이 기록한 뿌리
용비어천가 서문(정인지가 1445년에 씀)은 그 내력을 이렇게 적었다.
목조가 북방에서 터를 열었고, 익조·도조·환조 세 임금이 이어 효제충신을 가법으로 삼으니 북방 사람들이 모두 마음을 돌렸다는 뜻이다. 선대는 전주에서 출발해 북방(朔方), 곧 동북면에서 터를 잡았다. 이 ‘북방의 가법’이 훗날 태조가 나라를 세우는 바탕이 되었다고 서문은 말한다.
태조 이성계 어진.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CC BY-SA 4.0)
한 가지 바로잡기 — 육룡에 시조는 없다
용비어천가의 육룡에 시조 이한은 들어 있지 않다. 이한은 그 위 선원선계(시조부터 목조의 아버지 이양무까지)이고, 육룡은 목조부터 시작한다. 이 연재도 그 순서를 따른다.
경복궁 근정전. 태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지은 법궁의 정전이다.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CC BY-SA 2.0)
다음 화 예고
1화에서는 목조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 북방에 터를 잡기까지의 기록을 따라간다.
출처: 용비어천가 서문·제1장(위키문헌 원문) · 조선왕조실록(sillok.history.go.kr)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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