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영성군파종중
전주이씨영성군파종중

조선왕조 대하 (9화) 1361년, 동북면상만호 이성계

자료 확인일 2026.10.26 · 발행일 2026-10-27

시대의 배경을 상징하는 설명용 AI 삽화
AI 설명용 상징 삽화 · 자체 제작 · ChatGPT 구독 생성 · 실제 인물·사건·유적 사진이나 고증 복원도가 아닙니다.

8화가 이자춘의 귀부와 쌍성 수복으로 끝났다면, 9화부터는 그 아들 이성계(李成桂)의 기록을 따라간다. 다만 훗날의 태조를 미리 불러 세워 영웅담으로 밀어붙이지 않으려 한다. 이 시기 사료에서 이성계는 아직 고려의 관직을 받은 동북면 상만호였다.

『태조실록』 총서는 공민왕 10년, 곧 1361년 9월의 일을 적었다. 독로강만호 박의(朴儀)가 반란을 일으켜 천호 임자부(任子富)와 김천룡(金天龍)을 죽였고, 먼저 토벌에 나간 김진(金璡)이 제어하지 못하자 왕이 이성계를 원군으로 보냈다는 내용이다. 이성계는 친병 1,500명을 거느리고 갔으며, 박의가 강계로 달아난 뒤 그 무리를 붙잡아 처형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이성계가 당시 통의대부·금오위 상장군·동북면 상만호라는 직함으로 왕명 아래 움직였다는 점이다. 둘째, 동북면의 질서가 이미 지방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자춘 세대에 고려로 돌아온 지역의 기반 위에서, 아들은 고려 조정의 군사 명령을 수행하는 인물로 기록된다.

하지만 이 기록은 조선이 세워진 뒤 편찬된 『태조실록』 총서다. 토벌의 규모와 과정은 후대 왕실 기록의 서술이라는 성격을 함께 지닌다. 그래서 이 회차는 이성계를 ‘운명적으로 떠오른 인물’로 단정하지 않는다. 원문이 말하는 범위, 곧 반란 진압을 위해 파견된 동북면의 장수라는 자리에서 출발한다.

이 기준은 이후 회차에도 같다.

이 기사는 조선 건국 뒤 편찬된 『태조실록』 총서이므로, 토벌의 세부는 후대 왕실 기록의 성격을 함께 고려해 읽는다.

시대의 도구를 상징하는 설명용 AI 삽화
AI 설명용 상징 삽화 · 자체 제작 · ChatGPT 구독 생성 · 실제 인물·사건·유적 사진이나 고증 복원도가 아닙니다.

같은 해 겨울, 압록강을 건너온 홍건적이 고려의 서북을 흔든다. 동북면의 한 토벌 기록은 곧 나라 전체의 위기와 맞닿게 된다.

자료 출처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