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영성군파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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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대하 (6화) 도조 이춘과 두 아들

1334년, 도조 이춘(李椿)은 풍질을 앓고 있었다. 그는 맏아들 자흥, 곧 몽고 이름 탑사불화에게 관직을 넘기려 하였다. 그러나 둘째 부인 조씨는 자기 아들 완자불화가 관직을 이어 지키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태조실록』 총서는 이 장면을 도조 집안의 계승 문제와 함께 기록하였다. [근거: 『태조실록』 총서 제20기사]

고려 국왕의 인장을 재현한 도안
그림 1. 고려 국왕의 인장을 재현한 도안. 이 화에서 다루는 선명과 인신은 관직 계승의 권한을 나타내는 핵심 물건으로 기록된다.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Samhanin·쿠모야 (CC0)

정실 박씨가 낳은 두 아들

도조의 첫째 배위는 경비 박씨였다. 박씨는 알동 백호 박광의 딸이었다. 실록은 박씨가 두 아들을 낳았다고 적었다. 맏아들은 자흥이며 몽고 이름은 탑사불화였다. 둘째 아들이 환조 이자춘이다. [근거: 『태조실록』 총서 제15기사]

두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은 자흥이니 몽고 이름은 탑사불화이고, 다음 아들은 곧 우리 환조이다.
— 『태조실록』 총서 제15기사, 국역 인용

1334년 도조가 관직을 탑사불화에게 전하려 했다는 기록은 정실의 맏아들이 계승 대상으로 거론되었음을 보여 준다. 같은 기사에서 조씨가 완자불화를 내세웠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실록은 두 갈래 아들들의 이름과 계승 요구를 한 문단에 나란히 남겼다. [근거: 『태조실록』 총서 제20기사]

조씨가 낳은 완자불화와 나해

도조가 박씨 사후 맞은 조씨의 아들로는 완자불화와 나해가 기록된다. 1342년 도조가 세상을 떠난 뒤 탑사불화가 정실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관직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그해 9월 탑사불화도 죽었고, 그의 아들 교주는 아직 어렸다. [근거: 『태조실록』 총서 제21기사]

이때 나해는 형 완자불화와 함께 조씨의 친정인 조 총관의 세력을 믿고 선명과 인신을 가져갔다. 관내 군민들은 조씨가 적실이 아니므로 나해가 관직을 이을 수 없다고 반발하였다. 환조는 탑사불화의 아내 박씨와 어린 교주를 개원로로 보내 사정을 진술하게 하였다. [근거: 『태조실록』 총서 제21기사]

조씨는 적실이 아닌데, 나해가 어찌 아버지의 관직을 이어받을 수가 있느냐?
— 『태조실록』 총서 제21기사, 관내 군민의 말

알동 사람을 돌려보내지 않다

1337년 원나라 중서성은 1290년에 익조를 따라온 알동 사람들을 찾아 데려가려 하였다. 도조는 중서성에 글을 올려 사정을 설명하였고, 마침내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 기록은 도조의 관직 계승 문제와 별도로, 알동에서 남하한 사람들을 계속 거느린 사실을 보여 준다. [근거: 『태조실록』 총서 제20기사]

고려 시대 청동거울
그림 2. 고려 시대 청동거울. 도조와 아들들이 활동한 고려 후기의 물질문화를 보여 주는 실물 자료다.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Gary Lee Todd (CC0)

1342년, 계승이 다시 움직이다

도조는 1342년 7월 24일 훙하였다. 함흥부 예안부 운천동에 장사되었고, 능호는 의릉이다. 탑사불화가 관직을 이었으나 두 달 뒤인 9월에 죽었다. 1343년 정월 원나라는 어린 교주가 성장할 때까지 환조가 임시로 관직을 잇도록 하였다. 나해는 선명과 인을 가지고 차인사에 숨었다가 붙잡혀 죽었다. [근거: 『태조실록』 총서 제21기사]

『용비어천가』 제7장은 도조의 행영에서 두 마리 까치를 쏜 뒤 큰 뱀이 까치를 다른 나무에 올려놓았다는 실록 기록을 왕조의 상서로 노래하였다. 이 화에서는 그것을 실제 사건의 인과로 해석하지 않고, 조선 왕실이 선대의 기록을 어떻게 노래로 편성했는지만 확인한다. [근거: 『태조실록』 총서 제19기사·『용비어천가』 제7장]

뱀이 까치를 물어 큰 나뭇가지에 얹으니 성손의 장흥에 좋은 징조 먼저 보인 것이니
— 『용비어천가』 제7장 현대어
인물실록 기록
자흥·탑사불화박씨의 맏아들, 1342년 도조 뒤를 이어 관직 계승
환조 이자춘박씨의 둘째 아들, 1343년 교주가 성장할 때까지 임시 계승
완자불화·나해조씨 소생으로 기록, 나해는 선명과 인신을 가져감
다음 화 예고
도조 뒤의 관직을 임시로 이어받은 환조 이자춘의 이름과 활쏘기, 그리고 성장한 교주에게 관직을 돌려주려 한 기록을 살핀다.
출처: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총서 제15기사(경비 박씨·자흥·환조) · 제19기사(행영의 두 까치와 큰 뱀) · 제20기사(1334 계승 논의·1337 알동 사람) · 제21기사(1342 도조 훙·탑사불화·교주·환조의 임시 계승) · 『용비어천가』 제7장(위키문헌 원문 대조) · sillok.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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