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조의 휘는 이춘(李椿)이고, 어렸을 때 이름은 선래(善來)였다. 몽고 이름은 발안첩목아(孛顔帖木兒)다. 『태조실록』은 도조가 선명을 받아 아버지의 관직을 이어받았다고 적는다. 이 화는 도조의 이름과 승계, 혼인, 그리고 그가 활동한 동북 일대를 따라간다.
이름이 셋이다
도조(度祖)의 휘(諱)는 이춘(李椿)인데, 어렸을 적의 이름은 선래(善來)요, 몽고(蒙古) 이름은 발안첩목아(孛顔帖木兒)이다. 선명(宣命)을 받아 아버지의 관직을 이어받았다.— 『태조실록』 총서 3장 B면, 국역 인용
실록은 승계 연도를 이 기사에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 화에서도 연도를 확정하지 않고, 승계 사실만 기록대로 옮긴다.
고증 메모. 1258년 기사에는 목조가 관할한 8개 백호 가운데 '이춘(李春)'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도조 이춘(李椿)과 한자가 다른, 별개의 인물이다. 같은 음의 이름을 혼동하지 않도록 이 화에서는 도조를 이춘(李椿)으로만 적는다.
알동 백호의 딸과 혼인하다
도조의 첫째 배위는 경비(敬妃) 박씨다. 알동 백호 증 문하시중 박광의 딸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두 아들이 태어났다. 맏아들은 자흥(子興)이니 몽고 이름은 탑사불화(塔思不花)다. 다음 아들이 곧 환조(桓祖)다.
배위(配位)는 경비(敬妃) 박씨(朴氏)니, 알동 백호(斡東百戶) 증 문하 시중(贈門下侍中) 박광(朴光)의 딸이다. 두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은 자흥(子興)이니, 몽고 이름은 탑사불화(塔思不花)이고, 다음 아들은 곧 우리 환조(桓祖)이다.— 『태조실록』 총서 3장 B면, 국역 인용
알동은 목조가 천호로 자리 잡은 곳이었다. 도조가 그 백호의 딸과 혼인했다는 사실은 이 집안이 알동의 토착 세력과 맺은 관계를 보여 준다. 실록은 혼인의 의미를 따로 해석하지 않는다. 이 화는 기록에 있는 혼인 사실만 적는다.
화주로 옮기다
박씨가 세상을 떠난 뒤 도조는 화주로 옮겨 거주하였다. 그 뒤 쌍성 총관의 딸 조씨를 다시 맞았다. 재혼과 그 소생들의 기록은 다음 화에서 자세히 다룬다.
동북면의 사내
도조의 아버지 익조는 1300년 쌍성 등지의 고려 군민을 다스리는 다루가치에 임명되었고, 안변부 봉룡역 북동에 장사되어 지릉(智陵)이라 불렸다. 할아버지 목조는 고려에서 의주 병마사로 삼아 고원을 지켜 원의 군사를 막게 한 인물이다.
도조가 살았던 땅은 의주(곧 덕원), 알동, 안변, 화주, 함주로 이어지는 동북면 일대였다. 도조는 의주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최씨는 등주(곧 안변)의 호장 집안이다. 익조는 안변을 왕래하였고 간혹 화주와 함주에도 갔다.
『용비어천가』 제6장은 고려의 운명이 쇠하면 나라를 맡을 분이 동해의 바닷가에서 이를 따르는 모습을 노래한다.
고려(麗)의 운명이 쇠하거든 나라를 맡으실 것이므로 동해(東海) 바닷가가 저자 같으니— 『용비어천가』 제6장 후반, 현대어 풀이 (위키문헌 원문 대조)
이 대목은 동해의 바닷가가 사람들이 모여드는 저잣거리처럼 번성하는 모습을 노래한다. 이 화는 실록이 적은 동북면 이주의 기록과 함께 읽는다.
도조 가계 한눈에 보기
| 구분 | 내용(실록 기재) |
|---|---|
| 휘(諱)·소자·몽고 이름 | 이춘(李椿) · 선래(善來) · 발안첩목아(孛顔帖木兒) |
| 아버지 | 익조 이행리 |
| 배위(첫째) | 경비(敬妃) 박씨, 알동 백호 증 문하시중 박광의 딸 |
| 박씨 소생 | 맏아들 자흥(몽고 이름 탑사불화), 둘째 아들 환조 |
도조의 두 아들 자흥과 환조, 그리고 조씨 부인과의 재혼 기록을 다룬다. 쌍성 총관의 딸과 낳은 완자불화·나해의 이야기도 실록에 따라 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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