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확인일 2026.10.26 · 발행일 2026-10-29

1362년 2월, 조소생(趙小生)이 원나라 심양행성 승상 나하추(納哈出)를 끌어들여 삼살·홀면을 침입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여러 차례 패한 도지휘사 정휘(鄭暉)가 이성계의 파견을 청하자, 고려는 그를 동북면 병마사로 보냈다. 이 대목은 『태조실록』 총서 기사 40번에 비교적 간결하게 남아 있다.
7월을 다룬 다음 기사는 훨씬 길다. 덕산동원, 함관령, 차유령, 달단동, 함흥평 등 여러 지명이 이어지고, 이성계가 선봉을 물리치고 야간 공격과 복병을 활용해 나하추 군을 물리쳤다고 서술한다. 나하추가 뒤에 화호를 통하고 말과 물품을 보냈다는 대목도 있다. 원문에는 이성계의 개인 무용을 강조하는 장면과 대화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장면을 당대 현장의 녹취처럼 다룰 수는 없다. 이 기사는 조선 건국 뒤 편찬된 왕실 기록으로, 건국자의 전공을 길게 배열한다. 전투가 있었고 이성계가 동북면 병마사로 파견되었다는 뼈대와, 개별 활쏘기·대화·감탄의 세부 서술은 같은 무게로 단정할 수 없다. 이번 회차에서는 긴 원문을 복제하거나 장면을 재연하지 않고, 기록의 층위를 함께 밝힌다.
나하추는 단순한 한 사람의 적장이 아니라 원 말 동북아의 권력 변동을 보여 주는 이름이다. 이 시기 고려는 원 말의 혼란 속에서 북방의 군사 세력과 마주했다. 이성계의 활동이 이후 정치적 기반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는 가능하지만, 1362년의 기사만으로 이미 왕조 교체를 예정했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긴 전투 장면과 대화는 조선 건국 뒤 편찬된 총서의 서술이다. 이 글은 파견과 충돌이라는 확인 가능한 골자를 중심에 둔다.

전투 뒤에도 고려의 흔들림은 끝나지 않았다. 1364년, 공민왕을 바꾸려는 원 세력의 원정이 압록강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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