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영성군파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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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대하 (10화) 압록강을 건넌 홍건적

자료 확인일 2026.10.26 · 발행일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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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1년 겨울, 『태조실록』 총서는 홍건적(紅巾賊)이 압록강을 건너 서북 변방으로 들어왔다고 적는다. 기사에는 반성(潘誠)·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주원수(朱元帥)·파두번(破頭潘) 등의 이름과 함께 ‘20만’이라는 수가 보인다. 이성계가 적의 왕원수 이하 백여 명을 베고 한 명을 사로잡아 왕에게 바쳤다는 것이 해당 기사의 핵심이다.

숫자와 표현을 그대로 전설의 크기로 옮길 필요는 없다. 총서는 조선 건국 뒤 태조의 선대와 고려 말 활동을 정리한 기록이며, ‘20만’ 같은 군사 수와 전공의 묘사는 다른 동시대 자료와 함께 읽어야 한다. 원문에서 적이 보냈다는 글의 ‘110만’과 총서 서술에 나오는 ‘20만’도 서로 다른 수치다. 이 회차는 직접 대조한 총서 기사의 표현을 그 기록에 귀속해 읽으며, 별도 자료와의 교차 확인을 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 기사에서 이성계는 홍건적 침입에 대응한 고려 장수로 기록된다. 9화의 박의 토벌이 동북면 내부의 반란에 관한 기사였다면, 이번에는 압록강 이남의 방어선과 왕권의 존속이 걸린 침입이다. 이성계의 이름은 아직 왕이 아니라 고려 장수의 이름으로 쓰여 있다.

후대의 실록은 이성계를 태조라 부른다. 그러나 1361년의 사건을 읽을 때 그 호칭은 편찬 시점의 이름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당시 당사자가 훗날의 왕호로 불렸다는 뜻은 아니다. 이 연재는 편의상 이성계라고 쓰되, 원문 속 ‘태조’ 표기는 조선 왕실이 과거를 정리한 방식으로 구분해 둔다.

기사의 병력 수와 전공은 총서의 서술이다. 이 글은 그 표현을 현대식 통계나 현장 기록처럼 바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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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건적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동북면에는 원 세력의 장수 나하추(納哈出)가 들어온다. 다음 회차는 전투 묘사보다 사료가 전하는 범위와 성격을 먼저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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